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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개발자의, 개발자에 의한, 개발자를 위한 포스터 제작기

하루하루 살아가는 야자나무열매 2017.12.19 19:24

개발자로 전향하고 디자인을 직접 한다는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개발자들을 위한 포스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사무실 벽에 붙여두고 한 번씩 보면서 잊지 말아야할 방향성에 대한 글을 포스터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멈추었다. 몇몇 문구를 내놓고 어떤 디자인을 입혀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디자인. 약간은 진지한 톤의 문구를, 진지한 궁서체로, 옛 책들처럼 세로쓰기로.
세로쓰기에 어울리는 폰트를 찾다가 청월체​를 찾아내서 회사에 구매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무튼 회사 사무실에 회사 로고도 넣어두고 써야하니까. 회사에서 사용하려면 115,000원짜리 라이선스를 구매하면 된다. ​

어디서 출력을 해야하나 고민은 할 것도 없었다. 학생때 줄기차게 이용하던 충무로 프리맥으로 향했다. 최고의 장점은 1년 365일 열려있으면서 별의별 출력 방식에 다양한 종이를 지원하는 곳이다. 프리맥을 다녀왔더니 전직 디자이너 동료분이 거긴 아직도 불친절하냐신다. 프리맥이 불친절했었다는건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었던듯 하다. 하지만 옛 기억과는 달리 상당히 친절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바쁜건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은데. ​

잠시 추억에 젖어들려는 것을 고이 접어두고 종이부터 고르기 시작했다. 오늘의 종이는 리브스 디자인 250g으로 정했다. 이유는 종이의 질감이 마음에 들어서. 미세하게 울퉁불퉁한 엠보싱이 있는 점이 2차원에 3차원을 우겨넣은 느낌이다.
A1에 가이드라인 넣어서 출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사장님께서 돔보이야기 하는거냐면서 당연히 넣어주신단다. 돔보. 오랜만에 듣는 단어다. 인쇄업계는 여전히 일본어를 쓰고 있다. ​

3장을 맡겼는데 1시간은 걸린다고 하셨다.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근처 할리스로 향했다. 차 한잔 하면서 코딩을 하고 있자니 1시간은 금새 지나간다. ​

출력된 종이를 들고 프리맥 4층으로 올라갔다. 재단까지 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작업실로 준비해둔 곳이다. 내가 A1 사이즈 종이를 자를 수 있는 도구가 없으니 잘라가기로 한다. ​

내가 사방에 3mm씩 여백을 주고 디자인했다는 걸 깜박하고 전달하지 못했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칼로 3mm 안쪽에 자국을 내준다. ​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는 이런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배경이 없는 경우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자를 수 없다. ​

칼로 한 번에 힘을 주어서 자르면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번에 걸쳐서 자른다. 모두 잘라내고 나니 나름 뿌듯하다. ​

프리맥에서 A1 크기를 출력하면 기본 18,000원에 종이값을 더해서 계산한다. 리브스는 3,000원이니 도합 장당 21,000원. ​

벽에 붙이는 건 또 어쩌나 고민된다. 사무실 관리 전반을 담당하고 계신 동료분께 여쭤보니 벽에 손상이 가면 안된다고 하신다.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별의별 잡학지식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 껌딱지 같은게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열심히 구글링을 하다보니 조각접착제라고 불리는 물건인 것을 알아냈다. 고무찰흙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손으로 조물락대다가 붙이면 아무데나 척척 붙는다고 한다. 종이 정도야 끄떡없이 붙는다고 하길래 다이소에서 냉큼 사왔다. ​

하지만 뜯으려는 찰나에 치느님이 도착하시는 바람에 잠시 중단. ​

잠시 치느님을 영접하고 조물락거려 보았다. 질감이 고무찰흙과 정말 유사하다. 약간 더 찐득한 느낌이다. 이대로 붙이면 된다고 하니 포스터 네 귀퉁이 뒷면에 살짝 눌러 붙여둔다. ​

가만히 앉아계시던 동료분을 붙잡고 수평이 맞는지 봐달라며 붙일 자리를 잡고는 꾸욱 눌러준다. 조금만 더 팽팽한 느낌으로 붙이고 싶지만 이정도로 만족하고 나머지들도 기둥마다 붙여주었다. ​

나름 그럴싸하게 보여서 다행이다. 실험적으로 세 장만 출력해서 전시해보았으나, 시간이 나면 몇 장 더 시리즈로 제작해보리라 생각하며 마무리. 무엇보다 원하는 분위기의 무료 이미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다음 번에는 직접 촬영까지 해야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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